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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독일로 파견된 한국인 간호사 사진, 해외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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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봉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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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1970년대에 독일(서독)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기 위해서 파견된 한국인 간호사분들이 공항에서 내릴때 찍은 환영 사진에 대한 해외 커뮤니티 네티즌 반응 입니다. 


독일에 간호사를 포함한 인력파견 프로젝트는 1960년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때 외화획득과 실업 문제 해소를 위해 해외인력수출 정책을 수립하고 독일(당시 서독)과 체결한 '한독근로자채용협정'을 통해 15년간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되는 것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최근 2020년 국가에서 파독 근로자의 예우를 목적으로한 ' 파독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에 대한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현재 파견된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 중에 독일에서 자리를 잡은 분들도 있고 노후를 우리나라에서 보내고 싶어서 귀국한 분들도 있는데 이분들이 귀국해서 만든 마을이 남해에 위치한 남해독일마을 입니다. 


참고로 황정민 주연의 영화 국제시장 'Ode To My Father (2014)'에 주인공 부부가 파독 간호사와 부부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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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간호사들은 서독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1960s)


  


해외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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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nson94 

왜? 간호사가 부족해서? 아니면 서독과 한국 사이의 더 나은 이해와 협력을 위한 일종의 교환 프로그램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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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은 그다지 부유한 곳이 아니었고 한국 간호사들은 서독에 일하러 왔습니다.

서독과 한국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두 국가 모두 분단되어 있고 둘 다 자본주의 팀의 일부였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예외를 제외하고는 두 국가의 관계는 여전히 매우 가깝고, 한국-독일 이중국적자는 독일 시민권을 잃지 않고 한국군에서 복무하기 위한 특별 허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독일 내에서 장기비자 신청이 가능하죠.   

  

 

Shad0wdar    

영화 국제시장(2014)은 이 사연에 관한 이야기의 일부를 담고있어. 꽤 괞찬은 영화지.     





Anthony_AC

한국에는 심지어 독일 마을을 본뜬 마을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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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OnLoan

그리고 중국은 바로 그걸 베꼈지...   

 

 

Carnifex  

이 간호사들은 모두 매우 우아하게 옷을 입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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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에 있어서 큰 폭의 상승이었지. 60년대의 한국은 완전 빈곤했어. 

뭐, 나는 80년대에 미국 군인들이 집에 거주하는 "도우미"를 쉽게 살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   

       

    

Gaijin_Monster 

모든 극성 한류팬들은 이 사진을 봐야해. 이 분들이 자연스러운 한국 여성의 모습이야.   

쌍꺼풀 수술도 안하고, 코수술도 안하고, 턱을 깍지 않고, 미백제, 메이크업, 헤어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지.    

           

       

West_Mortgage_8450    

문제는 이 간호사들이 그 후 독일사람들에게서 따뜻한 대접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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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matophagian

거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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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은 독일인들에게 꽤 따뜻한 대우를 받았어.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일은 오늘날과 같이 관용적인 사회로 바뀌었지.    

(이탈리아인, 터키인, 한국인 등은 잘 알거야)    

** 한국 외에 이탈리아, 터키 근로자들도 해당 시기에 우리나라와 같이 독일로 근로자를 파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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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에 한국 광부도 갔었고, 한국의 거의 모든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기초 독일어를 배웠어.   

일부 독일어 단어는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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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본주의 팀이었기 때문에, 세계의 다른 "서방" 국가들로부터 교육과 훈련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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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그당시 부자가 아니었다"라는 말은 거의 애교수준이지. 1960년에 한국의 1인당 GDP는 한 예로 라이베리아, 가나, 콩고민주공화국, 이라크보다 낮았어.      

한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으며 흥미롭게도 북한보다 더 가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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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한국을 봐. 겨우 수십 년 동안 모든 것이 어떻게 이렇게 변하는지 정말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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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encephallic   

맞아. 생활 수준이 매우 높은 경제 강국, 전자 및 조선 분야의 세계적인 리더, 세계에서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인력 중 하나, 과학, 의학, 엔지니어링 및 기술 연구에 대한 순 공헌자 한국.  

그리고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대중 문화, 이 모든 것이 불과 몇 수 십년만에 이루어진거야. 믿을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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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xi4sure  

그게 바로 K팝의 힘이지!    

     

   

dmthoth  

한국은 80년대 후반까지 군사 독재자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부패했어.

그래서 한국이 다른 서구 국가들을 따라잡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    


>번역: 봉봉

>출처: 모두의댓글 www.motha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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